불확실성의 시대, 힘보다 신뢰와 협력의 금융질서를 생각한다
[시사타임즈 = 김종환 얼라이드 경영컨설팅 회장] 세계는 지금 새로운 전환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미국의 통상정책과 관세, 지정학적 갈등, 에너지 가격, 국가부채와 재정 문제, 인공지능을 둘러싼 기술 경쟁, 그리고 미국·일본의 금리와 환율정책이 서로 얽히면서 세계 금융시장의 불확실성도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미래를 섣불리 예단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를 맞히는 능력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금융시장의 신뢰를 지킬 수 있는 원칙과 협력의 틀을 마련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심에는 세계 최강의 경제·금융국가인 미국의 리더십이 있습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금융질서의 중심입니다. 달러는 국제무역과 금융에서 가장 중요한 통화이며, 미국 국채시장은 세계 금융시장의 핵심적인 안전자산 시장 가운데 하나입니다.
따라서 미국의 금리정책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의 금리가 움직이면 달러가 움직이고, 달러가 움직이면 세계의 자본이 움직입니다. 결국 미국의 통화정책은 세계 각국의 환율과 금리, 자본흐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세계의 중앙은행이 아니라 미국의 중앙은행입니다. 미국의 물가와 고용, 금융안정을 기준으로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른 나라의 경제상황 때문에 미국의 금리를 결정한다면 오히려 중앙은행의 신뢰가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미국이 자신의 정책이 세계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외면해서도 안 됩니다.
따라서 미국에 필요한 것은 다른 나라를 위해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주요국과 긴밀하게 소통하는 책임 있는 금융 리더십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의 엔화 문제는 이러한 세계 금융의 새로운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본의 엔화 약세는 단순한 환율 문제가 아닙니다. 일본은 세계 금융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미국 국채를 대규모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엔화 방어를 위해 일본의 해외자산이 급격히 움직일 경우 미국 국채시장과 글로벌 자금흐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결국 <엔화 → 일본 금융시장 → 해외자산 → 미국 국채 → 미국 장기금리 → 세계 금융시장>이라는 하나의 연결고리가 형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각국의 통화정책을 별개의 문제로 생각할 수 있었지만, 오늘날의 세계 금융은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가 되었습니다. 미국도 혼자 세계 금융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 높은 국가부채와 재정적자, 장기금리 상승, 인플레이션 위험, 통상정책, 지정학적 갈등 등이 서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금융시장은 정부의 의지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결국 시장은 재정의 지속가능성, 통화의 신뢰, 경제의 생산성, 그리고 정책의 일관성을 평가합니다. 따라서 미국의 금융 리더십은 시장을 억지로 움직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미국을 계속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역시 책임 있는 금융정책이 필요합니다. 엔화의 지나친 약세를 방치해서도 안 되지만, 환율시장 개입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해서도 안 됩니다. 금리정책의 정상화, 경제의 생산성 향상, 재정건전성, 그리고 시장과의 충분한 소통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나라도 이제 세계 금융질서의 수동적인 참여자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제조업 경쟁력과 반도체, 조선, 자동차, 배터리, 방산 등 핵심 산업을 갖춘 국가로 성장했습니다.
따라서 한·미·일 금융협력 역시 한 단계 발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Fed와 재무부, 일본의 BOJ와 재무성,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가 금융시장 정보를 더욱 긴밀하게 공유하고, 위기 상황에서는 유동성과 외환시장 안정에 협력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특히 달러·엔·원 환율, 미국 국채금리, 한·미·일 자금 흐름, 국제 에너지 가격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금융협력 체계가 필요합니다.
나는 앞으로의 세계 금융질서가 ‘각자도생’의 질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세계 금융의 중심이라는 사실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중심이라는 것과 미국 독점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미국은 가장 강한 국가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일본도 세계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걸맞은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역시 다른 나라의 정책에 흔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경제적·금융적 체력을 키워야 합니다.
결국 새로운 금융질서의 핵심은 네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신뢰·예측 가능성·협력 그리고 책임. 세계는 지금 인공지능과 첨단기술, 공급망 재편, 경제와 안보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어느 한 국가가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미국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강대국일수록 더 많은 협력이 필요합니다. 힘으로 세계를 움직이는 리더십에서 신뢰로 세계를 이끄는 리더십으로, 자국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는 정책에서 동맹과 파트너의 안정까지 고려하는 정책으로, 위기가 발생한 뒤 대응하는 금융정책에서 위기를 사전에 예방하는 금융협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세계 금융질서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떤 미래가 오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원칙과 준비는 할 수 있습니다. 불확실한 시대에 필요한 것은 미래를 맞히는 능력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입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입니다. 그러나 초강대국의 진정한 Leadership은 세계의 금융을 지배하는 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힘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고 더 많은 국가와 함께 안정과 번영의 질서를 만들어 가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것이 오늘날 세계가 미국에 기대하는 '초강대국의 품격'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역시 그 질서의 수혜자로만 머물 것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함께 새로운 세계 금융질서를 만들어 가는 책임 있는 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측보다 준비이고, 경쟁보다 협력이며, 힘보다 신뢰입니다.
글 : 김종환 얼라이드 경영컨설팅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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