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타임즈 = 이신목 박사] 사실 온톨로지의 이야기는 그것을 제대로 펼쳐 보이기에 쉽지 아니한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 근본 구조가 기존의 종교나 정치, 철학, 사상 레벨들을 넘어서고 그것들을 깨뜨리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온톨로지 이야기의 근원적 구조는 실상 조로아스터교의 그것과 매우 유사한 면이 있지만, 그것마저 스케일에 있어서 넘어서는 것이다.
기존의 어느 종교, 어느 정치, 어느 철학, 어느 사상과도 같지 않지만, 생활 레벨에서 이야기와 일치하기 때문에, 기존의 모든 종교, 정치, 철학, 사상을 거느린 지도자들조차도 그 이야기를 무시하기가 힘들다.
본 칼럼을 제시하고 있는 필자도 이 온톨로지를 전공하면서, 기성 신앙들을 넘어서는 스케일에 대하여서 매우 놀랐지만, 이제는 익숙한 편이다. 그런즉, 이는 언젠가는 일반인들도 그 스케일에 익숙하여진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온톨로지 시대로 근접하여 들어가는 2027년에는 모두가 놀랄 것이다. 그 스케일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의 기성 관념들을 사정없이 깨뜨린다. 그것은 마치 <중국 이야기>와 같은 것이다. ‘중국’이라는 말을 처음 들으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삼국지의 대륙 규모의 전투에서 피어오르는 뿌연 전진(戰塵)을 연상한다. 그만큼 중국인들은 스케일도 크고, 저패턴에도 강한 이야기를 원하였고 그것을 뿌려대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스케일도 크고, 즉, 고패턴에도 강하고, 저패턴에도 강한 이야기를 하려 하다 보면, 고패턴과 저패턴 둘 중 하나에 오점이 생기게 되고 만다. 그 오점이 바로, 현대에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이다. 저패턴에서 발생한 것이다.
사실 온톨로지 이야기의 가장 비근한 예를 들기 위하여서 중국의 예, 구체적으로, 삼국지의 사례를 들었으나, 온톨로지 이야기는 중국 이야기와도 사실상 매우 다르다.
지난 시간에 말한 <바이칼 연대기>가 이 온톨로지 이야기가 나타나는 부분이다. 온톨로지 이야기는 그 스케일에 있어서 훨씬 더 크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NLP로 하지 아니하고, 온톨로지로 한 것이다.
온톨로지 이야기는 직접 당면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직접 당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길 수는 있을 것이다. 그 과정들의 씨 역할을 하는 메인 이야기가 바로 지난 시간에 말한 <바이칼 연대기>이다.
온톨로지 이야기 역시, 고패턴과 저패턴에 동시에 강한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중국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고패턴이나 저패턴의 둘 중 하나에 문제가 생겨 버린다. 중국 이야기의 경우, 저패턴에 문제가 생겼지만, 온톨로지 이야기에는 그보다 소중한 고패턴에 문제가 생긴다.
온톨로지 이야기는 모두의 관심이 모여 있는 인문학적 부분들에 문제가 생긴다는 말이다.
이 영향은 모두에게 미쳐서, 세상이 쉽지 않게 들썩이게 된다. 그러한 부분들의 영향력이 흘러간다는 말이다.
보통 인문학을 해서 돈 벌어주는 것도 아닌데, 그런 걸 해서 뭐하냐 라고 말들을 하지만, 돈 벌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다. 이 부분에 균열이 생기면, 모두가 돈 버는 일에만 환장하는 지옥 같은 세상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AI 이야기를 하다가, 온톨로지 이야기를 하다가, 인문학 이야기까지 와 버렸다. 사실 이런 부분은 천천히 이야기를 하려 하였는데, 사람들의 욕구가 빗발쳐서 어쩌는 수 없이 와 버리고 만 것이다.
이 욕구는 사실 기존의 종교들에서 담아내려고 하던, “너희들 그대로 이 종교 안 믿고 살다 보면, XX에 가서 평생 유황불 속에서 산다.”라고 하는 겁 주는 이야기를 그대로 영계에서 현실화시키는 이야기이다. 영원한 세계에서 잘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모두의 욕구가 그렇다는 말이다. 이것이 온톨로지에서 가늠하는 인간의 스케일이 영원성을 띠고 있는 이유이다.
글 : 이신목 박사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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